• 목록
• 답변
• 글쓰기

나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
결혼도 서른 중반을 넘겨 했고, 아내와 나는 그 뒤로 오랫동안 기다렸다.
병원 문턱을 여러 번 넘었고, 여러 번 희망과 실망을 반복했다.
그러다 마흔셋,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 화면을 가리키며 “잘 크고 있네요”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이 영 어색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타줬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게 누구의 인생인지,
그 안에 나는 어디쯤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여전히 직장에서만 쓰였다.
집에 오면 ‘여보’, 그리고 그냥 ‘그 사람’이었다.
아이는 돌 무렵까지 말을 잘 못했고,
어릴 적부터 나보다 아내 쪽으로 안기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에서 퇴근해 현관문을 열자,
아이의 작은 발소리가 달려왔고,
그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분명히 들렸다.

“아빠!”

순간, 시간도 멈춘 듯했다.
그 짧은 두 음절이, 내 삶을 통째로 바꿔놨다.
나는 그 순간을,
내 이름보다 더 소중한 ‘호칭’을 처음 받은 순간이라고 기억한다.

그 한마디에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역할을 갖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회사원, 남편, 아들, 형이었지만
그날부터 나는 단 한 사람에게 있어 ‘아빠’가 되었다.

그 이후로는, 힘든 날에도 그 말 한마디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아빠.” 그 말은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지 알려줬고,
내가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를 상기시켜줬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날’을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그날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말 한마디로,
내 인생이 처음으로 완성된 느낌을 받았던 날.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더 이상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
‘아빠’라는 말이 더 반가운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