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병간호한 아내가 처음 외출한 날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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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처음엔 말도 흐릿했고, 오른손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한때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식사도, 씻는 것도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나는 회사에서 조기퇴직을 하고
아내 곁에 머물기로 했다.
간병이라는 말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사람은 체력보다 마음이 먼저 지친다.
아내도, 나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갔다.
재활은 느렸다.
겨우 계단 몇 개 오르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었고,
몇 글자 말하는 데도 숨이 가빠졌다.
그럴수록 아내는 더 침묵했고, 나는 더 조용해졌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창밖에 벚꽃이 흩날리던 오후,
아내가 창가에 앉아 가만히 말하듯이 중얼거렸다.
“나… 나가볼래.”
순간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지금 이 몸으로 나가면 다칠 수도 있다’는 걱정과
‘이 사람이 다시 세상과 닿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뭉클함이
한순간에 밀려왔다.
우리는 천천히 준비했다.
모자를 쓰고, 신발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쥐었다.
단지 집 앞 편의점까지 걸어갔을 뿐이지만
그 길은 우리에겐 마치 해외여행처럼 낯설고 긴장이 됐다.
사람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고
아내는 몇 걸음마다 숨을 고르며 멈췄다.
하지만 그날 아내 얼굴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오랜만에 햇빛을 받으며 걷는 그 모습이
나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말없이 웃었다.
그 미소는 치료약도, 의사의 격려도
주지 못했던 ‘의지’라는 이름의 힘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걷는다는 건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 아내는 매주 집 앞을 걷는다.
걸음은 여전히 느리고, 피곤해하지만
그 얼굴에는 분명히 살아있다는 감정이 담겨 있다.
그날이 내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날이었다.
아내가 삶을 다시 선택해준 날.
처음엔 말도 흐릿했고, 오른손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한때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식사도, 씻는 것도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나는 회사에서 조기퇴직을 하고
아내 곁에 머물기로 했다.
간병이라는 말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사람은 체력보다 마음이 먼저 지친다.
아내도, 나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갔다.
재활은 느렸다.
겨우 계단 몇 개 오르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었고,
몇 글자 말하는 데도 숨이 가빠졌다.
그럴수록 아내는 더 침묵했고, 나는 더 조용해졌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창밖에 벚꽃이 흩날리던 오후,
아내가 창가에 앉아 가만히 말하듯이 중얼거렸다.
“나… 나가볼래.”
순간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지금 이 몸으로 나가면 다칠 수도 있다’는 걱정과
‘이 사람이 다시 세상과 닿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뭉클함이
한순간에 밀려왔다.
우리는 천천히 준비했다.
모자를 쓰고, 신발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쥐었다.
단지 집 앞 편의점까지 걸어갔을 뿐이지만
그 길은 우리에겐 마치 해외여행처럼 낯설고 긴장이 됐다.
사람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고
아내는 몇 걸음마다 숨을 고르며 멈췄다.
하지만 그날 아내 얼굴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오랜만에 햇빛을 받으며 걷는 그 모습이
나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말없이 웃었다.
그 미소는 치료약도, 의사의 격려도
주지 못했던 ‘의지’라는 이름의 힘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걷는다는 건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 아내는 매주 집 앞을 걷는다.
걸음은 여전히 느리고, 피곤해하지만
그 얼굴에는 분명히 살아있다는 감정이 담겨 있다.
그날이 내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날이었다.
아내가 삶을 다시 선택해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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