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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자랐다.
어릴 적부터 “참아라”, “괜찮다”는 말을 듣고 컸고,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보다 눈치를 먼저 살폈다.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돈을 벌었다.
낮에는 아르바이트, 밤에는 공장,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 넘도록 매년 생일은 그저 하루 중 하나였다.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원망할 새도 없이 지나갔다.

그러다 서른다섯이던 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다.
직장도 옮기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는 오래된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함께 지냈다.

그해 내 생일 아침,
나는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작은 냄비를 부엌에서 조심스럽게 꺼냈다.

“미역국 끓였어.
오늘 당신 생일이잖아.”

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따뜻한 국물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그 옆에 놓인 달걀프라이 하나,
김치 몇 조각.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진수성찬은 못 차려도,
아이들한테 아빠 생일은 미역국 먹는 날이라는 건 알려주고 싶었어.”

그 말을 들은 다섯 살 아이가
작은 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말했다.

“아빠, 생일 축하해요.”

나는 그 순간 울컥했다.
그동안 버티며 살아왔던 시간이
단 한 끼 식사와 한마디 말에 모두 무너져내렸다.

그건 단지 미역국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인간답게 느껴졌던 시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몸으로 느꼈던 첫 순간이었다.

지금은 이사도 했고, 형편도 조금 나아졌지만
나는 그때 단칸방에서 먹은 미역국 맛을 잊지 못한다.
그날은 내 생일이기도 했지만,
나라는 사람의 삶이 따뜻하게 확인된 날이었다.

아내가 말없이 끓인 국,
아이의 짧은 축하 한마디.
그 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