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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필요한 건 있어도, 꼭 사야 하는 게 아니라면 미뤘고
원하는 게 생기면
“그건 다음에”라며 마음을 눌렀다.

어느 순간부터
사고 싶다는 감정 자체를
사치로 여기게 되었고,
그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조금은 철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삶이 몇 년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명품 브랜드의 가방을
직접 만져보게 된 날이 있었다.
단정하고, 튀지 않고,
오래 써도 질리지 않을 그런 디자인.

처음에는 그냥 구경만 하려 했다.
그런데 직원이 조심스럽게 건네준 그 가방을
거울 앞에서 메 본 순간,
예상치 못한 감정이 올라왔다.

“나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그건 단지 예쁜 가방을 멨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가 나를 ‘예쁘게 보고 싶어 했던 마음’,
나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싶었던 마음이
그 가방을 통해 다시 떠올랐다.

나는 결국,
며칠을 고민한 끝에 그 가방을 샀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 하는 가방이
무슨 위로가 되냐고.

하지만 나에겐,
그 가방이
그동안 꾹 눌러왔던 감정에 대한 보상이었다.

수고했다는 말,
고생 많았다는 말,
그래도 잘 살고 있다는 확인을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내가
나 자신에게 건넨 조용한 위로였다.

그 가방을 처음 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무게는 분명 가방에 있었지만,
마음의 무게는 처음으로 조금 가벼워졌다.

그 이후로 나는 명품을
더 이상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번 돈으로 샀는지가 아니라,
어떤 감정을 담아 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그날 깨달았다.

나를 위한 소비는
곧 내가 나에게 전하는
“괜찮아, 너 참 잘하고 있어”라는 말일 수 있다.